독서 리뷰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룰루 밀러-

부추차 2022. 10. 5. 0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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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예전부터 물고기라는 단어에 묘한 반감을 느껴왔다.

아내와 연애할 때 아쿠아리움에 간 적이 있다. 어릴 적 생물학자가 꿈이었던 나는 지금도 종종 아쿠아리움에 간다. 아쿠아리움처럼 수많은 생명체를 한 번에 볼 수 있는 곳도 잘 없다. 그때 나는 "물고기 보러 갈래?"라고 물어보며 데이트를 신청했었다.

 

나는 예전부터 물고기라는 단어에 묘한 반감을 느껴왔다. 고기라는 단어는 식재료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가? 왜 바다나 강과 같은 물속에 사는 동물들을 대부분 물고기라는 말로 통칭(범주화)해서 부르는가? 물속에 사는 동물들은 우리에게 먹히기 위해 존재한다는 뜻인가? 마음에 들지는 않았지만 마땅한 단어가 떠오르지 않았던 나는 그냥 그렇게 말했다. "물고기 보러 갈래?"

 

이 책을 읽고 그때 했던 생각이 다시 떠올랐다.

 

범주화는 인간에게 유용하다.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이 세상의 실체를 드러내는 것은 아니다.

보고 듣고 느끼고 감각하며 인식하는 대상을 범주화하는 것은 인간의 본성이다. 범주화는 인간에게 유용하다. 하늘의 별을 사자자리, 양 자리와 같은 별자리 이름으로 묶고, 한해살이 식물에서 맺힌 단백질이 많은 노란색의 열매를 콩이라는 이름으로 묶고, 우리를 성가시게 하는 날아다니는 작은 곤충을 벌레라는 이름으로 묶는다. 수많은 대상을 일일이 기억하기 어려우니 묶어서 대상을 인식하는 것이다. 그래야 저 별자리가 있는 곳이 어떤 방향인지, 이것이 먹을 수 있는 것인지, 위험하니 피해야 하는 것인지를 빠르게 판단하고 행동할 수 있기 때문이다.

 

범주화가 유용하다고 해서 그것이 이 세상의 실체를 드러내는 것은 아니다. 묶어놓은 별자리가 실제로 가까이 있는 것이 아니라 전혀 연관성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단지 지구에서 바라보는 우리 눈에 가까이 있는 것처럼 보일 뿐이다. 범주화를 하는 인간의 인식 중심적이고 임의적인 행위이다.

 

가까이 있는 별들을 양자리 사자자리와 같은 별자리로 범주화해 분류할 수도 있지만 그 별을 밝기에 따라서, 지구와의 거리에 따라서 생성된 시기에 따라서도 수많은 기준에 따라 다르게 범주화하고 분류할 수도 있다.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범주화하는 대상이 무생물일 경우에는 모르지만 그 대상이 생명체, 나아가 인간에게까지 확대되면 폭력적일 수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우생학이다. 사람을 피부, 눈동자, 머리카락 색등으로 범주화하고 아무련 연관이 없는 지능, 성격, 성향 등과 결부시켜 우열을 나누었다. 그리고 열등하다고 분류한 범주에게 불임 시술을 강제로 자행했다.

 

이 책은 우생학과 같은 참극이 어류를 비늘의 여부, 피부의 패턴, 등과 같은 분류하기에는 좋은, 하지만 연관성은 없는 기준으로 범주화할 수 있다는 믿음, 세상에는 드러내기만 하면 되는 숨겨진 구조와 있다는 믿음, 그리고 진화가 방향성과 지향성이 있다는 오해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진화는 현 상황에 적합한 최상의 생존 전략의 결과물이다. 그 전략에 우위는 없다. 방식만 다를 뿐이다.

 

소, 연어, 폐어를 보면 본능적으로 소를 다른 범주로 분류한다. 하지만 물에 사느냐 여부가 아니라 어떤 기관으로 호흡하느냐는 관점에서는 연어를 다른 범주로 볼 수 있다. 범주화는 인간 중심에서 유용할 뿐이지 실체가 아니다. 물고기는 인간의 편견으로 범주화한 생명체들에 붙인 이름이다. 물고기라는 단어에는 폭력성이 숨어있다.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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